[손더게/최윤화평] 조불려석



朝不慮夕조불려석

W. 책야미



  가을, 굉장히 추웠다. 윤은 병실에 앉아 어김 없이  봉지를 들고 정문으로 들어오는 택시를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회사의 택시였다. 택시 회사에서 쫓겨난 것이 벌써  번째가  것이다. 윤은 한숨을 쉬었다.


? 신부님, 일어나 있네?”

점심도  지난 시간입니다.”

이렇게  김에 부지런한 생활은  접어두고 쉬라니까.  같으면 오후에 일어나서 조금 뒹굴다가 병원에서 주는  먹고, 그러겠네.”


화평은 어김 없이 과자 조금과 요구르트를 사왔다.  보던 반창고가 팔뚝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신부는 굳이 어디서 얻은 상처인지 묻지 않았다.


어깨는  어때?”

매일 물어보면  질립니까?”

매일 대답이 다르잖아.”

 어깨는 어제와 똑같이 멀쩡합니다. 하루이틀이면 퇴원해도 되는데 윤화평  때문에 일이 커졌어요.”

아이,  .”


화평은 과장된 손짓으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의 입에는 이미 홈런볼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구마할 때에 어깨 제대로  썼다가 부마자가 ,  손에서 빠져나오기라도 해봐.”


  화평의 뒷목에 붙여진 큼지막한 반창고가  눈에 들어온다. 이쯤이면 충분한 타박거리가  것이다.


 목이랑 손바닥은  뭡니까?”


화평의 눈동자는 빛을 받으면 옅은 갈색이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새까맣기만 하다. 윤은 가을 햇살에 유리알처럼 보이는 윤화평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난 번에  할머니, 힘이 쎄시더라고. 그래도  형사님이 몸빵을  해주셔서, 이만하길 다행이지.”


그렇게 말하고 화평은 허허실실 웃었다. 짧은 수염이 퍼렇게 오른 턱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영락 없는 택시 아저씨였다. 아마도 이틀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미안합니다.”


신부는 시선을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불 속에 있을 자신의 발만 노려보았다.


  구마를 제대로 끝냈어야 했는데.”

, , 그거 한다, . 걱정  그만 하라니까.”


화평이 다섯 번째 홈런볼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혀를 끌끌 찼다.


 형사님한테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놓쳤다면서요?”

아아, 지금  경찰서에 보내고 오는 길이야.”


 말에 윤은 깜짝 놀라 화평을 쳐다보았다.


박일도가 아니더라고. 그냥 잡귀였나봐. 육광이  불러서 깔끔하게 하늘로 보내드렸지.”

박일도가 아니었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러면 윤화평 씨가 계속 감응하던 …?”

박일도 때문에 빙의된 부마자는 여전히 어딘가 있겠지. 헛다리를 짚어도 단단히 짚었어. 다시 동네 약수터부터 다시 뒤져 보려고.”


최윤은 착잡한 심정으로 화평의 우물거리는 입을 쳐다보았다. 이번 부마자로 인해 부상까지 입었는데 박일도가 아니었다니. 정작 본인이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병원 신세나 지고 있어야 한다면, 신부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박일도건 아니건 구마가 필요한 이들은 모두 같다. 아무튼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한 것이다. 부상을 입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으리라. 윤은 속으로 나지막이 성호를 그었다.


할머니가 고마워했어. 도와줘서 고맙다고.”


귀신 같은 윤화평. 윤은 그를 쳐다보았다. 화평은 이번에는 요구르트를  마시고 있었다. 둥그런 머리꼭지가 뒤로 슬슬 넘어가더니, 그는 목울대가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원샷을 했다.  기묘한 남자는 가끔 이렇게, 윤이 생각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낼 때가 있다.


심지어  귀신도 고마워하는  같더라.”

이젠 그런 것도 읽어냅니까?”

그러게. 육광이 형이 그러던데,  귀문 너무 넓어졌다고.”

?”

아냐, 그것보다 마태오 신부님, 얼굴에 살이  오르신  같다?”


화평은 그렇게 말하고는 넙죽 웃었다.  요구르트 통이 쓰레기통으로 경쾌하게 던져졌다. 윤은 이제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어깨를 살짝 움직여 보았다. 이틀 동안 병원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더니 그동안 무리했던 것이 말끔히 사라질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윤화평 씨는 그런  말고 제대로  밥을  먹어야겠네요.”

우와, 오늘 무슨 일이 있을라나, 신부님한테 걱정을  받고.”


화평은 넉살 좋게 받아치고는 점퍼를 채웠다. 윤은 그가 바로 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까?”

다행이 아직까지는 없지만,  필요해질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빨리 건강해지기나 합시다.”

어제  형사님과 통화했는데,   윤화평 씨도  마시던  아니었습니까. 사건,   풀리고 있잖아요.”

아마 지금 택시 몰다 음주 단속에라도 걸리면, 면허 정지는 거뜬히 나올걸?”


화평은 이쪽을 바라보며  웃었다. 최윤은 도대체 그가  저렇게 웃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에 물도 없으면서,   마시고 술이나 깨시죠. 사고 내지 말고.”


그럼에도 튀어나가는 말은 그리 상냥하지 않다. 윤은 신도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던  자신을 도무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했더라.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었다. 본래 걱정이나 관심은  흐르듯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신부는 혼란스러웠다. 윤화평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그는 병실의 미니 냉장고 앞으로 뚜벅뚜벅 걷는 화평을 쳐다보았다.  사람에게도 다른 존재로부터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신의 사랑을,  자에겐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는가.


예예, 마십니다.”


컵에 물을 따르면서 윤화평은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신부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평소와 다른  어떤 감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이 신부는 그의 뒷목에 드러난 반창고를 세었다.  개였다.


윤화평 ?”


화평은 유리컵을   대답이 없었다. 서늘한 바람이 창가에서부터 들어와 병실 바닥을 감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윤화평 .”


최윤은 나지막이 부르고, 최대한 눈길을 떼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발을 뺐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섣불리 자극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이도 일반 병실엔 다른 환자 없이 그들  뿐이었다.


윤화평 , 돌아오세요.”


곁에 가서 서자 과연 새까만 눈동자가 냉장고 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열린 냉장고로부터 마치 지옥문이라도 되는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윤은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그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폈다. 윤화평의 눈동자는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아래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으리라.


아주 잠깐동안 최윤은 울컥 어떤 망상에 시달렸다. 열린 냉장고 속에서 커다란 손이 나타난다. 손에는 묵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윤은 자신의 어깨로부터 아릿한 고통을 느꼈다.  자신의 손이 냉기를 지나, 바닥에 깔린 가을 바람을 뚫고  남자에게로 향하는 것을.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걱정이다. 흐르지 않는 관심이다.


화평의 눈동자는 여전히 감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경험으로 인해 최윤과 강길영은 화평의 감응 상태를 오래 두면 더욱 벗어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위험을 감수하고 그를 불러야  때다.


윤화평 !”


반응이 있었다. 화평은  발을 앞으로 딛었다. 열린 냉장고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활짝 열리고, 화평의 머리가 냉동고 문에 닿았다. ! 둔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찧는 소리가 울렸다.


뭐합니까, 윤화평 !”


!    머리 찧는 소리가 마치 반창고 속을 쑤시는  같았다.


정신 차려요!”


! 최윤은 엉겁결에 손바닥으로 화평의 이마를 감쌌다. 사람을 움직이는 무의식은 강하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윤은  손으로 화평의 어깨를 억지로 지탱했다.    냉동고 문에 머리를 박으려는 화평의 동작은 간신히 저지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자유로운   손이 문제였다.


커흑, 윤은 숨을 뱉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평의 손이 윤의 목을 쥐었을  이미 최윤은 계산을 끝마쳤다. 부마자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윤은 주저 없이 생각을 실천했다. 발을 들어 힘차게 화평의 배를 걷어찼다. 그러자 윤화평은  풀린 인형처럼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아직 들려있던 유리컵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화평, 윤화평 .”


최윤은 열린 냉장고에 기대서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화평에게 목이 졸린 것은 오랜만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윤화평이 고개를 들었다. 옅은 갈색 눈동자. 그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뒤흔들었다. 한쪽 손이 피투성이지만 느끼지 못하는  같았다.


내가…. 내가 혹시….”

 괜찮습니다.”


최윤이 그의 말을 잘랐다. 화평은 어쩔  모르는 얼굴을 하고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윤에게 가까이 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창가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 , 미안해. 목에….”

그것보다,  봤나요?”

저번에  산속 약수터야. 남자가…. 남자가 죽었어. 가까이에 절이 있는  같았는데, 촛불이 많았고…. 이번엔  이름을   같아.”


화평은 고개를 뒤흔들었다. 저건 조금  홈런볼과 요구르트를 해치우던 윤화평이 아니다. 그렇게 웃는 윤화평은 어디에서  것일까. 최윤은 엉망으로 구겨진 환자복을 추슬렀다.


그럼 바로  형사님께 연락하죠.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윤화평 씨는 손부터….

아냐!”


터져나온  목소리에 신부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춰 세웠다. 화평은 다시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신부는 여기에 있어. 부마자인지 확실해지면, 그리고 구마 의식을   있는 상황이 되면,   부르던가  테니까.”

윤화평 .”


말을 끝마치자마자 바로 병실을 나가려던 화평의 발걸음은  자리에 우뚝 섰다. 윤이 병실 문에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그를 부른 목소리에 화가 섞여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기도  것이다.


“그 미안한, 걱정하는 마음. 방해됩니다.”

?”

당신이 나나  형사님한테 미안해하는 마음,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엔 방해라고요.”


화평은 잠시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으로부터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 아주 작게 들려왔다. 최윤은 어느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죽을만큼 미안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을 망치진 않아.”


화평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런 죄책감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살았으면, 벌써 옛날에 죽고 없지.”

가지 마세요.   끝났습니다.”


그래서 화평은   걸음 가지 못해 우뚝 서고 말았다. 최윤은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눈동자를 먼저 확인했으며, 병실 문을 닫았다. 화평은 조금   표정으로 윤이 하는 짓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앉으시죠.  처리하고 나가세요.”

어디에 손이 왔는데?”

윤화평 , 당신 .  납니다.”


그러자 그제야 그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잠시 그가 한눈을  사이 최윤은 빠르게 걸어가 침대 헤드 옆에 있는 간호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창가로부터 여전히 가을 바람이 새어들고 있었고, 병원 정문의 나무들이  마지막 이파리들을 떨어내는 중이었다.


생각을   봤는데, 우리 셋은 걱정이 너무 많습니다.”

“…?”


엉겁결에 최윤이 누르는 대로 침대에 앉으면서 윤화평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바로 가야 . 방금 내가   말해줬잖아! 지금 바로 가야 된다고.”

당신 감응 상태로 보면, 피해자는 이미 죽은 상태일 겁니다. 당신이 이렇게 피칠갑하고 나타나면 부마자가 잘도 당신에게 털어놓겠네요.”


그리고 그는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아, 신부가 한숨을 쉬자 화평은 바닥을 쳐다보았다.


당신이  걱정하는  압니다. 미안해 하는 것도 알고.”


윤의  말에 화평은 뚱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너무 아무렇지 않은 표정만 짓지 말라고요. 어떤 때엔 이런  보고, 겪는 당신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 짓는  무서울 정돕니다.”

 이걸  년이나 겪었어, 마태오.”


화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는  목소리까지도 너무나 평이하다.


 나름대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유지하게  것뿐이야.”

 팔은  다쳤어요?”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최윤은 성당에서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던 관심이나 애정 같은 것들을 기억해내는 일을 포기했다. 윤화평이  앞에 있을 , 사실 그런 것들을 기억나지 않는다.


….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잖아. 멀쩡히 일어나시더라. 그리곤 오르막에서 휠체어를 밀어버렸어. 막는다고 막았는데, 그거 맞아서 엄청  멍이 생겼더라고.”


화평의 목소리는 낮은 편이다. 일부러 과장할 필요가 없다면  그렇다. 윤은 자신의 팔뚝을 문지르는 윤화평을 잠시 쳐다보다가 햇빛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붉은 석양이 창가를 태우는 가운데, 침대에 걸터 앉은 윤화평의 눈동자 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거 보면 웃기지 않아?”


화평은 웃었다.  웃음은 평소 웃음과 다르다.


분명 귀신인데, 우리는 진짜 다치잖아.”


최윤은  웃음이 진짜 웃음이라는 것을 안다. 그건 조금 무섭기도 했다. 숱한 시체와 , 그리고 () 모습을 보며 살아온 윤화평의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웃는다는 .


  간호사가 도착했다. 화평은  마디  없이 앉아있었다. 간호사는 깨진  조각들과 피투성이 손을 보곤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최윤이 소독과 붕대를 부탁하자 그는 놀란 표정 그대로 고개글 끄덕이곤 돌아 나갔다.


당신, 죄인 아닙니다.”


최윤은 작게 말했다.


우릴 걱정하려면 그냥 평범하게 해요. 나도 당신 걱정되니까. 억지로 웃지 말고.”


우리 마태오 신부님이 오늘따라  이렇게 자상하실까.”


화평은  이상한 웃음을 지었다. 윤의 눈에 그것은 이제 이상하게만 보인다. 그러나 곧바로 화평의 표정은  다른 이상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  지나니까 이제 조금 아프네.”

 계속 나잖아요.  눌러 봐요.”


윤은 손을 내뻗어 윤화평의 손바닥을 쥐었다. 그러자 화평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럼  형사님한테 전화해서  이름이라도 먼저 말해둘게.”

그러시든가요.”

, , 아프다! 너무 세게 누르는  아냐? 그리고  어깨…!”

지금  앞에 있는 나를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앞으로 해야  일들을 걱정하시죠.”


윤은 자신이 하는 말을 이해할  없었다. 그러나 말은 계속 쏟아져 나갔다.


오늘만   아니잖아요. 앞으로 내내 그렇게 표정 지어내면서   겁니까?”


화평은 입을 다물었다. 윤은 그가 자신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있었지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진 못했다. 묘하게도 어딘가 부끄럽다는 것만은 알겠다.


최윤, 무섭네.”


그리고 화평은  웃었다. 그의 눈동자는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 윤화평은 조금 무서운 사람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신부는 다친  어깨에 긴장이 배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 당장도 당신이나  형사님 대신 죽을  있어. 그러니까 말만 하라고.”

그러겠습니다.”


화평은 고개를 떨궜다. 그의 어깨가 아주 미약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마시고 운전하지 말고, 부마자와 감응하면 혼자서 대책 없이 찾아가지 말고. 그러다 내가 윤화평  대신 죽으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둥근 어깨였다. 떨리는 것은, 아주 둥글고 무서운 사람의 어깨. 최윤은 화평의 손바닥을 누르고 있던 자신의 손을 살짝 치워 보았다. 피는 멎은  같았다. 아니, 아직 멎지 않은  같았다. 그는 다시 손에 힘을 줬다. 어깨의 떨림은 조금  이어졌다.


간호사가 부산스러운 발걸음과 함께 병실로 돌아오기까지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공기 속에, 불타던 석양은 사라져 버리고 형광등 불빛이 머리칼 위에 머물렀다. 그들 모두 화평의 손바닥의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내려보고만 있었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냉기 속에 열렸던 지옥문이 서서히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간호사의 손에 냉장고가 제대로 닫히고나서, 불완전한 치료는  분간 계속되었다. 붕대에 감긴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윤화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