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ody Nose

伯牙絶絃 백아절현

w.책야미

최윤은 여러 신도를 알고 지냈다. 그것은 그의 성격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기야 했다. 길영은 조금 객쩍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순순히 인정했다.

“내가 잘못 짚었네. 성당 인맥이라는 거, 쓸모 있을 때도 있네요.”

“너무 오래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고 제 집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강 형사님은 집을 자주 비우시니, 급한대로 제가 간호하죠.”

“그렇다면 안심이지만.”

길영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후우- 한숨을 쉬었다. 길영의 이마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는 중이었다. 그들은 병원 2층 복도에 서 있었고, 정원에서 아이들이 쏘다니며 질러대는 목소리가 창을 왕왕 울렸다.

“우리 이제 병원에서 그만 쫌 벗어나야 되지 않겠냐. 한 놈이 나오니 또 한 놈이 들어가고. 이러다 내가 제명에 못 살겠다.”

길영이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내뱉은 혼잣말을, 윤은 알아들었다. 평소였다면 그 말에 희미한 미소라도 지어주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럼 딱 일주일만 여기 의사 선생님한테 공짜로 신세 지는 걸로 알고, 난 간다.”

“부마자는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세요?”

그 질문에 길영은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글쎄. 그냥 감옥 들여보냈다고 말하면, 윤화평 그 녀석, 깨자마자 시끄럽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왜 그 귀신새끼들은 빙의자한테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거야?”

“소중한 사람일수록 기대도 많아지는 법이니까요.”

“우리 세 사람, 무슨 계라도 들어야겠어. 가족을 해치려는 부마자가 나타나면 구마하기 전에 일단 무조건 모여서 심리 치료부터 받는거야.”

그 씁쓸한 농담에도 윤은 웃지 못했다. 물론 내뱉은 길영도 웃지 못했다. 그들은 잠시 적막한 복도에 서 있었다. 정말 간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잠깐 복도에 머물렀다가 길영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라져 간다. 최윤은 주머니에서 십자가를 꺼내 손에 쥐었다. 이런 때일수록 사랑이, 믿음이 필요하다. 그는 복도 벽에 등을 기대 세운 채 한참 동안 십자가를 쥐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공짜로 치료 받고 입원 수속을 밟은 것만도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심지어 1인실이다. 이곳 병원장은 한 신부와 친했던 신도였다. 불쑥 나타난 최윤이 구마하다 다친 사람이라 말하니 원장은 선뜻 “그렇다면 꼭 병실을 혼자 쓰셔야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십여년 전, 한 신부는 그 병원장을 구마하다 피를 토했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 때에도 돈은 절대로 안 받겠다던 병원장과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있다. 윤은 복도 멀리 보이는 한 신부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느새 자신의 손가락이 병실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다시 쳐다보니 한 신부라 생각했던 그림자는 복도에 서 있는 커다란 괘종시계였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니 그곳은 꼭 죽은 공간 같았다. 누워 있는 화평의 앞머리는 푹 젖어 있었다. 윤은 다가가서 곁에 둔 수건을 들어 다시금 그의 이마를 훔쳤다. 위로 쓸어 올리자 반질반질한 이마가 훤히 드러난다. 윤화평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최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십자가를 들어올렸다. 화평의 이마에 십자가가 닿았을 때, 그는 숨을 쉬는 것을 잊었다. 붉은 묵주 알알이 손아귀를 빠져나가 화평의 까만 머리칼 사이로 흘러내렸다. 윤화평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그럴 때 있어요.”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최윤은 손을 뒤로 뺐다. 십자가는 화평의 베개 아래로 스르르 흘러내리고 말았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들이민 것은 육광이었다.

“괜찮아요, 신부님. 나도 정말 그럴 때 있다니까.”

그는 개량한복 차림에 손에는 펄럭이는 종이 묶음을 들고 있었다. 그가 병실로 들어오자 갑자기 그 공간은 사람이 사는 공간처럼 바뀌었다.

“화평이 이놈이 또 죽을 뻔 했다면서요?”

“아, 병원 옮기면서 연락을 바로 못 드려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육광은 한숨을 쉬며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다시 보니 그의 한 손에는 작은 과일 바구니도 들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을 떠나 선반 위에 놓이자, 바구니는 생각보다 컸다.

“지 할애비 걱정시키기 싫다고, 이 녀석이 지 비상 연락처로 내 번호를 하도 외우고 다녀서, 이젠 좀 익숙해졌나 싶어도 매번 이런다니까요. 이놈 몸이 튼튼한 게 천만 다행이지.”

“처음 실려갔던 병원에서는 의사를 바로 구할 수가 없어서, 중간에 이리로 왔습니다.”

“강 형사님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육광은 힘들어 보이는 낯으로 과일 바구니에서 귤 하나를 꺼내 까기 시작했다. 귤 향이 화평의 이마 위에서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래도 저 혼자서 이놈 뒤치다꺼리 하던 때보다는 두 분이 계시니 좀 맘이 놓입디다. 뭐 어딜 얼마나 꿰맨 거래요?”

“옆구리를 찔려서 출혈이 컸지만 상처가 크진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 말에 육광은 하얗게 질려서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그렇게 자세하게는 말씀 안해주셔도 돼요. 피 생각을 했더니 벌써부터 어지럽네.”

“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최윤은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침착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이번 부마자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윤화평 씨는 쓰러지기 전에 그에게도 하급령이 따라다닐 거라고 하더군요. 아직 빙의되었다는 확인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자입니다.”

최윤은 강 형사에게 받은 메모지를 육광에게 내밀었다. 육광은 의아해하면서도 곧장 그것을 받아들어 들여다 보았다.

“그…. 그런데요? 부탁하신다는 게…?”

“혹시 여길 찾아가서, 실제로 빙의자인지 확인을 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딘가에서 와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1층 로비로 달려 들어온 아이들이 내는 소리일 것이다. 그리곤 너무나 갑자기 화평이 으음, 앓는 소리를 냈다. 그들 모두는 고개를 돌려 화평을 쳐다보았다. 윤화평은 미간을 찡그린 채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육광이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만졌다. “어허-이 잡귀가 앉았거든 물러가고 원몽에 흉흉하거든 동녘 이리와 같이 건네오거라-.” 육광이 뭐라 중얼거리는지는 최윤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중얼거림은 흥얼거림 같기도 하고 귓속말 같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화평이 잇새로 내던 앓는 소리가 고요해지고 그의 찌푸린 낯 또한 반듯이 펴졌다는 것이다. 육광은 이마를 어루만지던 손을 거둬 그가 먹다 둔 사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최윤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폼은 심히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사제님이 날더러, 그러니까, 박수더러 가서 귀신을 확인하라는 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육광은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물었다.

“큰 원귀가 아니라면 당신 혼자서도 충분히 구마할 수 있다고 윤화평 씨가 그랬습니다.”

“아니, 사제님은 뭘 하시고요?”

“저는 어쩌다보니 며칠간 예식함을 가지고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엄구마예식에 쓰는, 그거 말씀이신가?”

윤은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고로 그만 부서졌습니다. 새로 장만하기 전까지는 의식을 쉬려고요.”

육광은 조금 충격받은 표정으로 윤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직까지도 사제로부터 구마를 부탁받았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가 누워 있는 화평에게, 그리고 여전히 멀거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윤에게로 데굴데굴 구른다.

“이건 그럼 언제….”

“급합니다. 가능하다면 바로 굿해야 됩니다.”

윤의 입에서 그 말이 빠져나왔을 때, 참지 못하고 윤화평이 웃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순간 두 사람이 그를 쳐다보자 화평의 얼굴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육광에게는 지금 화평이 깨어 있는지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 바로요?”

“네, 지금 바로요. 혹시 박일도와 연관된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섣불리 행동하진 마시구요. 윤화평 씨가 감응하질 않았으니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허어, 참….”

“저희 교구에서 사례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아니, 뭐, 부탁하시는데 가야죠.”

육광은 허허, 소리를 내곤 품에서 부채를 꺼내 쥐었다. 깊어가는 가을에도 그 부채는 언제나 육광이 소지하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부채를 윤에게 내밀었다.

“저기, 이것 좀 잠깐 읽어주실래요, 제가 영어를 못 읽어서.”

엉겁결에 부채를 받아든 최윤은 시선을 내려 부챗살 사이에 가득 쓰여 있는 문자를 쳐다보았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무슨 문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 멍한 표정으로 다시 육광을 돌아보았는데, 육광은 꽤나 수상한 포즈로 막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 아니네. 영어가 아니라 한자구나, 참. 내 정신 좀 보게.”

허허, 또 다시 그 웃음소리다.

“그럼 바로 연락드릴 테니까 핸드폰이나 꼭 쳐다보고 계세요.”

그는 가볍게 목례를 해 보이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걸어나갔다. 그가 병실 밖으로 나가자 윤은 어딘가 어지럽다는 생각을 했다. 희안한 사람이었다.

“왜 어울리지 않게 거짓말은 하고 그래.”

화평이 누운 채 나지막이 말했다. 목이 심하게 잠겨 있었다.

“그 예식함, 신부님이 들어다 박살낸 거잖아. 봤어.”

“언제부터 깨어 있었습니까?”

“육광이 형이 자장가 해 줄 때.”

“…당신은 그걸 자장가라고 부릅니까?”

화평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입꼬리만 끌어당겨서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그 때, 어떻게 된 거야. 홀렸던 거야?”

화평의 물음에 윤은 대답 없이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남은 귤 몇 개를 집어 다시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병실은 또 다시 죽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럼 왜 그랬어?”

“어디까지 기억 납니까.”

“어어…. 누가 앰뷸런스를 불렀어. 전화소리가 들리고….”

그 때 화평은 천천히 눈을 떴다. 훤해진 이마에 얼굴이 더욱 멀겋다.

“그 부마자. 어떻게 됐어?”

“강 형사님은 감옥에 넣었다고 말하자고 하더군요.”

화평은 천장을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러나 윤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은 어차피 언제가 되었건 찾아내겠죠. 그 사람은 자살을 했습니다.”

“…눈을 찔러서?”

“구마는 성공했습니다. 눈을 찌르진 않았어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옥상에서 뛰어내렸더군요. 유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자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구요.”

“아아.”

화평은 다시 눈을 감았다.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습이 쓰라렸다.

“그러게 내가 경찰 먼저 불러놓자니까.”

“단순히 베란다로 향하는 걸 막았더라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있었을까요.”

최윤은 곁에 놓인 수건을 집어 개었다. 손으로 무언갈 잡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였다. 이유는 저도 몰랐다.

“수술한 곳은 좀 어떻습니까?”

“어? 나 수술했어?”

화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바로 몸을 일으키려다가, 꽥꽥대는 소리와 함께 다시 베개 위로 머리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최윤은 깜짝 놀라 두 손을 치켜들고는 화평을 내려보았다.

“뭐하는 겁니까?”

“아야야…. 어디를 수술했나 싶어서….”

“옆구립니다, 조심 좀 해요.”

“아아, 가뜩이나 운전 못하는데 큰일났네.”

“저한테 갚으시면 됩니다.”

“뭐야, 신부님이 돈 냈어?”

윤은 대답하지 않았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화평은 낑낑대며 상체를 일으키는 중이었다. 최윤은 그를 돕고 싶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벌떡 일어나 미리 준비해뒀던 물병을 집어 왔다. 화평은 조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바로 물을 받아 들었다.

“아까 그거, 분명히 잡귀야. 저번에 그 할머니 기억나지?”

“압니다.”

“그런데 왜 굳이 육광이 형을 보내?”

화평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실은 하나도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최윤은 그가 억지로 짓는 표정인지 뭔지 모를 그 기묘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칼이 반짝이던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구마중, 그 칼은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나 부마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빙의된 자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괴물 같은 힘을 보여주곤 한다. 최윤이 급히 손을 내뻗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길영이 홱 돌아보았고, 그 때에 윤화평은 귀신 같은 얼굴의 부마자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그 칼이 길영과 윤 중 누구를 노렸는지는 지금도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더운 냄새와 함께 후두둑 떨어지던 핏방울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화평은 제 무릎으로 제 핏자국을 짓이기며 부마자를 내리 누르고 있었다. “어서!” 그가 소리칠 때, 소름이 돋았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에서야 눈치챈 것이다. 부마자에게서 빠져나오는 악(惡)이 짠 바닷물과 함께 흩뿌려지는 바로 그 바닥에, 윤화평은 핏구덩이를 만들고 쓰러져 있었다. 윤화평! 길영이 크게 외치고, 앰뷸런스를 부르고, 그 모든 것을 다 하는 동안 최윤은 화평의 뒤통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미 죽은 것이 분명하다. 온통 피였다. 죽었으리라. 아아, 죽은 것이다. 마태오 신부는 십자가를 쥔 자신의 손을 내려보았다. 최윤의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 있지 않았다. 그저 검붉은 피 뿐. 그는 분노에 사로잡혀 그것을 쨍그랑 소리가 나도록 던져 버렸다. 예식함이 그의 손 끝에 걸렸다. 닳고 닳은 손잡이의 나무 상자는 테이블에서 떨어져 큰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다. 마태오…! 부르는 소리에 최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화평이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최윤, 그러지 마…!

“야, 야, 왜 그래.”

문득 고개를 드니 화평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육광이 형은 왜 보내냐고.”

“별 뜻 없습니다.”

최윤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정말로 잠시 쉬려는 것뿐이에요.”

“그래, 사람이 쉬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화평은 베개 위로 등을 기댔다. 옆구리가 눌렸는지 약한 신음 소리도 같이 났다. 그는 육광이 두고 간 과일 바구니로 손을 뻗으려다 말았다. 윤화평은 잠깐 한숨을 쉬었고,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 그러지마.”

“무슨 소립니까.”

“사람 죽는 거 한 두 번 봐? 그런 때마다 일일이 휘둘리지 말라고.”

“사람 죽는 일에 눈 뒤집히는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난 니가 죽는 모습을 자주 봐.”

그렇게 말하는 화평을 다시금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숙인 채였다.

“너도, 강 형사님도. 가끔 할아버지도 나오고. 가장 자주 보는 건 엄마야. 가끔은 이게 내 눈인지, 누구 눈인지도 잘 모르겠어. 버릇처럼 왼쪽 눈을 감아보면 그제야 잠에서 깼다는 걸 알아.”

화평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엔 최윤의 붉은 묵주가 한가득 잡혀 있었다. 윤은 문득 그가 한참 이전부터 깨어 있었으리라는 아득한 생각에 급히 묵주를 받아 들었다.

“나 안 죽었잖아.”

화평은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그 표정을 마주해봤자 여전히 모를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바닷물을 토해내기라도 하지 않는다면. 최윤은 마치 기도라도 하듯 두 손을 모으고 침대 위에 고개를 묻었다.

“야, 신부님. 나 안 죽었다고. 괜찮다고.”

“…압니다.”

“아무리 내가 걱정된다고 해도 그렇지. 사제가 그렇게 쉽게 십자가를 버리면 쓰나.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데.”

“쉽게 목숨 버리려던 사람이 할 소리도 아니네요.”

그러자 화평은 처음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안 죽었으니 됐잖아. 서로 작업 도구는 잘 챙기자고.”

“다시 누우세요. 최대한 빨리 치료받고 병실 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이, 울어?”

“…기도 올리는 중입니다. 말 걸지 말아주세요.”

“그래.”

화평은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감았다.

“살려줘서 고맙다. 이번엔 정말 죽을 뻔했네.”

이런 때일수록 정말로 사랑이, 믿음이 필요하다. 최윤은 두 손에 두른 묵주를 어루만지며, 이불에서 오르는 귤 냄새를 맡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윤화평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칼 앞에 섰을 때, 그 앞에 몸을 던지기 전에 망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무엇도 쉽게 버려선 안 된다는 것을 저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죽음보다 낫다는 것을.

“잠 온다. 어이, 신부. 일어나봐.”

화평은 상처 때문에 끙끙대며 몸을 뒤척였다.

“여기에 이런 거 있으면 꿈자리가 뒤숭숭해. 이것 좀 저기다 모아 둬.”

그렇게 말하며 화평이 베개 속에서 꺼낸 것은 한 움큼의 부적 덩어리였다. 최윤은 고개를 들어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사랑이네요.”

사랑이, 믿음이.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자 화평이 또 한 번 웃다가 꺽꺽대며 옆구리를 잡았다.

“육광이 형이 날 아주 많이 좋아하긴 하지.”

윤화평은 그렇게 말하곤 갑자기 다 늙은 사람처럼 지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우리 최 신부만 하겠어?”

“…뭐라고 했습니까?”

“갑자기 잠이 막 오네.”

“한숨 더 자 둬요.”

“나 괜찮으니까, 정말 괜찮은데….”

화평은 중얼거렸다.

“…십자가는 계속 꺼내둬.”

朝不慮夕조불려석

W. 책야미

그 해 가을, 굉장히 추웠다. 윤은 병실에 앉아 어김 없이 흰 봉지를 들고 정문으로 들어오는 택시를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회사의 택시였다. 택시 회사에서 쫓겨난 것이 벌써 세 번째가 될 것이다. 윤은 한숨을 쉬었다.

“어? 신부님, 일어나 있네?”

“점심도 다 지난 시간입니다.”

“이렇게 된 김에 부지런한 생활은 좀 접어두고 쉬라니까. 나 같으면 오후에 일어나서 조금 뒹굴다가 병원에서 주는 밥 먹고, 그러겠네.”

화평은 어김 없이 과자 조금과 요구르트를 사왔다. 못 보던 반창고가 팔뚝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신부는 굳이 어디서 얻은 상처인지 묻지 않았다.

“어깨는 좀 어때?”

“매일 물어보면 안 질립니까?”

“매일 대답이 다르잖아.”

“제 어깨는 어제와 똑같이 멀쩡합니다. 하루이틀이면 퇴원해도 되는데 윤화평 씨 때문에 일이 커졌어요.”

“아이, 안 돼.”

화평은 과장된 손짓으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그의 입에는 이미 홈런볼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구마할 때에 어깨 제대로 못 썼다가 부마자가 그, 그 손에서 빠져나오기라도 해봐.”

그 때 화평의 뒷목에 붙여진 큼지막한 반창고가 또 눈에 들어온다. 이쯤이면 충분한 타박거리가 될 것이다.

“그 목이랑 손바닥은 또 뭡니까?”

화평의 눈동자는 빛을 받으면 옅은 갈색이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새까맣기만 하다. 윤은 가을 햇살에 유리알처럼 보이는 윤화평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난 번에 그 할머니, 힘이 쎄시더라고. 그래도 강 형사님이 몸빵을 잘 해주셔서, 이만하길 다행이지.”

그렇게 말하고 화평은 허허실실 웃었다. 짧은 수염이 퍼렇게 오른 턱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영락 없는 택시 아저씨였다. 아마도 이틀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미안합니다.”

신부는 시선을 둘 곳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이불 속에 있을 자신의 발만 노려보았다.

“그 때 구마를 제대로 끝냈어야 했는데.”

“또, 또, 그거 한다, 또. 걱정 좀 그만 하라니까.”

화평이 다섯 번째 홈런볼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혀를 끌끌 찼다.

“강 형사님한테 들었습니다. 어젯밤에 놓쳤다면서요?”

“아아, 지금 막 경찰서에 보내고 오는 길이야.”

그 말에 윤은 깜짝 놀라 화평을 쳐다보았다.

“박일도가 아니더라고. 그냥 잡귀였나봐. 육광이 형 불러서 깔끔하게 하늘로 보내드렸지.”

“박일도가 아니었다고요?”

“그렇다니까.”

“그러면 윤화평 씨가 계속 감응하던 건…?”

“박일도 때문에 빙의된 부마자는 여전히 어딘가 있겠지. 헛다리를 짚어도 단단히 짚었어. 다시 동네 약수터부터 다시 뒤져 보려고.”

최윤은 착잡한 심정으로 화평의 우물거리는 입을 쳐다보았다. 이번 부마자로 인해 부상까지 입었는데 박일도가 아니었다니. 정작 본인이 꼭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병원 신세나 지고 있어야 한다면, 신부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박일도건 아니건 구마가 필요한 이들은 모두 같다. 아무튼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한 것이다. 부상을 입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으리라. 윤은 속으로 나지막이 성호를 그었다.

“할머니가 고마워했어. 도와줘서 고맙다고.”

귀신 같은 윤화평. 윤은 그를 쳐다보았다. 화평은 이번에는 요구르트를 까 마시고 있었다. 둥그런 머리꼭지가 뒤로 슬슬 넘어가더니, 그는 목울대가 보일 정도로 시원하게 원샷을 했다. 이 기묘한 남자는 가끔 이렇게, 윤이 생각하는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낼 때가 있다.

“심지어 그 귀신도 고마워하는 것 같더라.”

“이젠 그런 것도 읽어냅니까?”

“그러게. 육광이 형이 그러던데, 내 귀문 너무 넓어졌다고.”

“예?”

“아냐, 그것보다 마태오 신부님, 얼굴에 살이 좀 오르신 것 같다?”

화평은 그렇게 말하고는 넙죽 웃었다. 빈 요구르트 통이 쓰레기통으로 경쾌하게 던져졌다. 윤은 이제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어깨를 살짝 움직여 보았다. 이틀 동안 병원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더니 그동안 무리했던 것이 말끔히 사라질 정도로 상태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윤화평 씨는 그런 거 말고 제대로 된 밥을 좀 먹어야겠네요.”

“우와, 오늘 무슨 일이 있을라나, 신부님한테 걱정을 다 받고.”

화평은 넉살 좋게 받아치고는 점퍼를 채웠다. 윤은 그가 바로 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 도움은 필요 없습니까?”

“다행이 아직까지는 없지만, 곧 필요해질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빨리 건강해지기나 합시다.”

“어제 강 형사님과 통화했는데, 그 때 윤화평 씨도 술 마시던 거 아니었습니까. 사건, 잘 안 풀리고 있잖아요.”

“아마 지금 택시 몰다 음주 단속에라도 걸리면, 면허 정지는 거뜬히 나올걸?”

화평은 이쪽을 바라보며 또 웃었다. 최윤은 도대체 그가 왜 저렇게 웃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에 물도 없으면서, 물 좀 마시고 술이나 깨시죠. 사고 내지 말고.”

그럼에도 튀어나가는 말은 그리 상냥하지 않다. 윤은 신도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던 그 자신을 도무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했더라.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었다. 본래 걱정이나 관심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신부는 혼란스러웠다. 윤화평에게 하느님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그는 병실의 미니 냉장고 앞으로 뚜벅뚜벅 걷는 화평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에게도 다른 존재로부터의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신의 사랑을, 저 자에겐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는가.

“예예, 마십니다.”

컵에 물을 따르면서 윤화평은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신부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평소와 다른 그 어떤 감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사이 신부는 그의 뒷목에 드러난 반창고를 세었다. 세 개였다.

“윤화평 씨?”

화평은 유리컵을 든 채 대답이 없었다. 서늘한 바람이 창가에서부터 들어와 병실 바닥을 감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윤화평 씨.”

최윤은 나지막이 부르고, 최대한 눈길을 떼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발을 뺐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섣불리 자극해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이도 일반 병실엔 다른 환자 없이 그들 둘 뿐이었다.

“윤화평 씨, 돌아오세요.”

곁에 가서 서자 과연 새까만 눈동자가 냉장고 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열린 냉장고로부터 마치 지옥문이라도 되는 양 냉기가 뿜어져 나온다. 윤은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그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폈다. 윤화평의 눈동자는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저 아래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으리라.

아주 잠깐동안 최윤은 울컥 어떤 망상에 시달렸다. 열린 냉장고 속에서 커다란 손이 나타난다. 손에는 묵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윤은 자신의 어깨로부터 아릿한 고통을 느꼈다. 그 자신의 손이 냉기를 지나, 바닥에 깔린 가을 바람을 뚫고 저 남자에게로 향하는 것을.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걱정이다. 흐르지 않는 관심이다.

화평의 눈동자는 여전히 감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였다. 경험으로 인해 최윤과 강길영은 화평의 감응 상태를 오래 두면 더욱 벗어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그만 위험을 감수하고 그를 불러야 할 때다.

“윤화평 씨!”

반응이 있었다. 화평은 한 발을 앞으로 딛었다. 열린 냉장고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활짝 열리고, 화평의 머리가 냉동고 문에 닿았다. 쿵! 둔한 소리와 함께 머리를 찧는 소리가 울렸다.

“뭐합니까, 윤화평 씨!”

쿵! 또 한 번 머리 찧는 소리가 마치 반창고 속을 쑤시는 것 같았다.

“정신 차려요!”

쿵! 최윤은 엉겁결에 손바닥으로 화평의 이마를 감쌌다. 사람을 움직이는 무의식은 강하다.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윤은 두 손으로 화평의 어깨를 억지로 지탱했다. 또 한 번 냉동고 문에 머리를 박으려는 화평의 동작은 간신히 저지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자유로운 한 쪽 손이 문제였다.

커흑, 윤은 숨을 뱉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평의 손이 윤의 목을 쥐었을 때 이미 최윤은 계산을 끝마쳤다. 부마자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윤은 주저 없이 생각을 실천했다. 발을 들어 힘차게 화평의 배를 걷어찼다. 그러자 윤화평은 실 풀린 인형처럼 갑자기 뒤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한 쪽 손에 아직 들려있던 유리컵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화평, 윤화평 씨.”

최윤은 열린 냉장고에 기대서 잠시 숨을 몰아쉬었다. 화평에게 목이 졸린 것은 오랜만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윤화평이 고개를 들었다. 옅은 갈색 눈동자. 그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뒤흔들었다. 한쪽 손이 피투성이지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혹시….”

“전 괜찮습니다.”

최윤이 그의 말을 잘랐다. 화평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하고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윤에게 가까이 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창가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아, 미, 미안해. 목에….”

“그것보다, 뭘 봤나요?”

“저번에 그 산속 약수터야. 남자가…. 남자가 죽었어. 가까이에 절이 있는 것 같았는데, 촛불이 많았고…. 이번엔 산 이름을 본 것 같아.”

화평은 고개를 뒤흔들었다. 저건 조금 전 홈런볼과 요구르트를 해치우던 윤화평이 아니다. 그렇게 웃는 윤화평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최윤은 엉망으로 구겨진 환자복을 추슬렀다.

“그럼 바로 강 형사님께 연락하죠. 저도 준비하겠습니다. 윤화평 씨는 손부터….”

“아냐!”

터져나온 큰 목소리에 신부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춰 세웠다. 화평은 다시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최 신부는 여기에 있어. 부마자인지 확실해지면, 그리고 구마 의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 때 부르던가 할 테니까.”

“윤화평 씨.”

말을 끝마치자마자 바로 병실을 나가려던 화평의 발걸음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윤이 병실 문에 더 가까운 것도 있었지만, 그를 부른 목소리에 화가 섞여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미안한, 걱정하는 마음. 방해됩니다.”

“뭐?”

“당신이 나나 강 형사님한테 미안해하는 마음, 그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엔 방해라고요.”

화평은 잠시 쳐다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으로부터 피가 떨어지는 소리만 아주 작게 들려왔다. 최윤은 어느새 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죽을만큼 미안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을 망치진 않아.”

화평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런 죄책감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살았으면, 벌써 옛날에 죽고 없지.”

“가지 마세요. 말 안 끝났습니다.”

그래서 화평은 또 몇 걸음 가지 못해 우뚝 서고 말았다. 최윤은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눈동자를 먼저 확인했으며, 병실 문을 닫았다. 화평은 조금 화 난 표정으로 윤이 하는 짓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앉으시죠. 손 처리하고 나가세요.”

“어디에 손이 왔는데?”

“윤화평 씨, 당신 손. 피 납니다.”

그러자 그제야 그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잠시 그가 한눈을 판 사이 최윤은 빠르게 걸어가 침대 헤드 옆에 있는 간호원 호출 버튼을 눌렀다. 창가로부터 여전히 가을 바람이 새어들고 있었고, 병원 정문의 나무들이 막 마지막 이파리들을 떨어내는 중이었다.